11월, 2024의 게시물 표시

우리 모두에게 금융 교육이 꼭 필요한 이유

이미지
혈액순환과 비슷한 경제 순환 경제 시스템은 인체의 순환계와 놀라울 정도로 유사한 메커니즘을 보인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밀턴 프리드먼은 "경제는 유기체와 같아서, 각 부분이 서로 연결되어 있고 상호의존적"이라고 강조했다. 2023년 세계은행의 연구에 따르면, 개인 부문의 투자가 1% 증가할 때마다 GDP가 평균 0.6% 상승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마치 혈액순환이 개선될 때 전신의 건강지표가 향상되는 것과 유사한 원리라 할 것이다. 개인의 경제 참여가 건강한 혈액순환과 같기 위해서는, 합리성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이는 많은 전문가와 정책 기관들이 국민 개개인의 금융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이유가 된다.   균형 잡힌 경제 활동의 중요성 IMF의 2024년 보고서는 경제적 불균형이 사회 전반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을 지적했다. 자금의 극심한 편중은 마치 특정 장기에 혈액이 과다 공급되는 것처럼 경제 시스템의 불안정을 초래하는 것이다. 워렌 버핏도 "경제적 번영은 모든 참여자가 시장에서 공정한 기회를 가질 때 실현된다"라고 강조하지 않았는가. 소득 불균형이 10% 감소할 때마다 경제성장률이 평균 0.3% 상승한다는 OECD 연구 결과에도 주목해 봐야 한다. 하지만 이런 자본의 편중 문제는 단순히 부의 불평등에만 기인하는 것이 아니다. 금융 지식의 격차가 경제적 기회의 불균형을 심화시키는 주요 원인이라 보는 것이 더 합당할 듯하다.   실제로 금융이해도가 높은 국가들은 더 많은 국민이 투자 시장에 참여하며, 이는 건전한 자본 순환 촉진의 효과로 이어진다. 금융 교육이 필요한 이유 세계경제포럼(WEF)의 2024년 보고서는 개인의 금융 이해도와 국가 경제성장의 강한 상관관계를 보여준다. 금융 교육을 받은 인구 비율이 10% 증가할 때마다 국가의 장기 경제성장률이 0.3~0.5% 상승하는 것으로 나타난 것이다. 금융 지식이 높은 사람들은 더 나은 재무 결정을 ...

쓸모없는 지식이 이끌어 내는 무한한 가치

이미지
"There is much pleasure to be gained from useless knowledge." (쓸모없는 지식에서도 우리는 많은 즐거움을 찾을 수 있다.)   영국의 수학자이자, 철학자, 사회 비평가였던 버틀랜드 러셀이 남긴 말이다. 아마도 지식의 본질적 속성과 지식을 탐구하는 과정이 지닌 무한한 가능성에 대해 말하는 듯하다. 당장의 효용성만을 기준으로 지식의 가치를 판단하는 것만큼 편협하고 교양 없는 행동도 없을 것이다. 심지어 이런 태도를 지닌 자가 지식의 효용성을 제대로 파악할 수 있을 리도 만무하다. 즐거움은 가치에서 나온다. 지식이 지닌 무한한 가능성의 가치를 알게 된다면, 그 어떤 지식에서도 즐거움을 구할 수 있는 것이다.   지식의 상호 연결성과 무한한 가능성 지식은 마치 거미줄처럼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으며, 하나의 지식은 다른 수많은 지식으로 향하는 관문이 된다. 이러한 지식의 연결성은 수많은 인류 문명사에서 끊임없이 확인되어 왔다. 순수 수학 이론으로 여겨졌던 비유클리드 기하학은 수십 년 후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의 핵심 도구가 된 사례가 대표적이다. 당시에는 '쓸모없는' 지식으로 여겨졌지만, 현대 물리학의 근간이 된 것이다.   지식이 지니는 잠재적 가치 겉보기에 무용해 보이는 지식이 혁신적 발견의 씨앗이 되는 경우도 많다. 페니실린의 발견은 실험실의 우연한 실수에서 비롯되었지만, 플레밍의 박테리아에 대한 '쓸모없는' 관찰과 호기심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이처럼 지식은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새로운 가치를 창출한다. 현대의 인공지능 기술 역시 따지고 보면 순수 수학, 논리학, 철학 등 다양한 분야의 '쓸모없어 보이는' 지식들이 융합되어 탄생한 결과물이라 할 수 있다. 특히 흥미로운 것은 게임 이론이라는 수학적 개념이 경제학, 진화생물학, 심지어 국제 정치학에까지 적용되어 새로운 통찰을 제공하고 있다는...

태스크포스의 개념, 우리에게 익숙해진 계기

이미지
태스크포스(Task Force)는 1920년대 군사 용어에서 그 기원을 찾을 수 있다. 본래 '특정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임시로 구성된 군사력'을 의미하는데, 제2차 세계대전 중 그 개념이 본격적으로 확립된 것이다.     당시 해군에서는 여러 함정을 하나의 작전 단위로 묶어 특정 임무를 수행하게 했는데, 이를 태스크포스라 불렀다. 이러한 조직 형태는 빠르게 변화하는 전장 상황에서 유연하고 효과적인 대응이 가능하다는 장점을 입증했고, 이것이 향후 다양한 영역에서의 태스크포스 개념의 근간이 된 것이다.   현대사회에서의 태스크포스 개념 확장 군사적 영역에서 시작된 태스크포스라는 개념은 오늘날 그 의미가 크게 확장되었다. 정부, 기업, 연구 기관 등 다양한 조직에서 특정 문제나 과제를 해결하기 위한 임시 조직을 지칭하는 용어로 널리 사용되는 것이다. 특히 기업에서는 새로운 사업 개발, 조직 혁신, 위기 관리 등을 위해 태스크포스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태스크포스라는 조직이 지니는 큰 특징은 목표 지향성과 한시성이라 할 수 있다. 명확한 목표를 가지고 집중적으로 업무를 수행하며, 목표 달성 후에는 해체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또한 다양한 부서와 전문 분야의 인력이 모여 협업하는 방식으로 운영되어, 복잡한 문제를 효과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이러한 특성은 급변하는 현대 사회에서 다양한 변수와 돌발 상황에 대처함에 있어 그 가치를 발하고 있다.   우리에게 익숙해진 계기 한국 사회에서 태스크포스라는 개념이 본격적으로 도입된 것은 1990년대 이후다. 특히 1997년 외환위기 당시, 정부와 기업들이 위기 극복을 위해 다양한 태스크포스를 구성하면서 이 용어가 널리 알려지게 된 것이다. 이후 한국 사회는 주요 현안이나 긴급한 과제가 발생할 때마다 태스크포스 조직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왔다.     정부 부문에서도 부처 간 협력이 필요한 정책 과제나 사회적 이슈에 대응하기 위해 태스...

선거의 속성과 현실 선거 세태의 부조리한 단면

이미지
"Elections are won by men and women chiefly because most people vote against somebody rather than for somebody."   이 문장은 프랭클린 피어스 애덤스(Franklin Pierce Adams)의 유명한 발언으로, 선거의 흥미로운 심리적 측면을 지적하고 있다. 사람들이 선거에서 투표할 때, 특정 후보를 '지지해서' 투표하기보다는 다른 후보를 '반대하기 위해' 투표하는 경향이 더 강하다는 말이다. 네거티브 정치가 판을 치는 현 세태에서 바라볼 때, 나는 썩 동의하는 바다. 민주주의의 현실적인 작동 방식을 꿰뚫어 보는 통찰로서, 과거는 물론 오늘날의 어느 선거 정치에서도 여전히 유효한 설명이란 사실이 씁쓸하기도 하다. "사람들은 희망에 투표하는 것이 아니라 분노에 투표한다."라는 버니 샌더스의 발언과 "정치에서는 당신이 누구인지보다 당신이 누구와 맞서 싸우는지가 더 중요하다."라는 빌 클린턴의 발언도 같은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다.   감정이 지배하는 민주주의, 정치적 양극화 현대 민주주의에서 선거는 단순한 지지의 표현을 넘어선 복잡한 심리전이 되어가고 있다. "누군가를 지지해서가 아니라, 누군가를 반대하기 때문에 승리한다"는 오랜 정치적 통찰이 오늘날 더욱 선명해져만 가고 있는 것이다. 희망보단 분노에 투표하는 이러한 세태는 소셜미디어의 발달과 정보의 양극화로 인해 더욱 심화되어 간다. 안타까운 것은 이에 따라 정치적 담론의 질적 저하다. 우리가 겪고 있는 현실의 정치는 디지털 기술의 발전과 함께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다. 소셜미디어는 정치적 의견을 표출하는 주요 창구가 되었지만, 동시에 확증 편향을 강화하는 도구가 되어 간다. 이에 더욱 강화되는 대립 구도는 온라인 공간에서 더욱 극명하게 드러나며, 건설적인 토론보다는 감정적 대립을...

예상을 크게 빗나간 미국 47대 대통령 선거 결과, 우리는 무엇을 놓쳤나?

이미지
미국 47대 대통령 선거가 끝났다. 주요 경합주에서의 압도적인 승리를 바탕으로 트럼프가 압승을 거뒀다. 어느 나라의 어떤 언론에서도 쉽사리 예상하기 힘든 결과였다. 독일, 영국, 프랑스 등 주요 유럽 국가의 언론들이 다소 달갑지 않은 논평을 내놓는 것과는 별개로, 이들에게도 일방의 "압승"일는 결과는 꽤 예상외였던 듯하다. 선거 직전까지 보도된 지지율이 거의 50:50이었으며, 카멀라 해리스가 다소 우위를 보이는 전국 단위 조사도 꽤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나라를 비롯한 바다 건너 언론들은 도대체 무엇을 놓쳤던 것일까? 트럼프 지지자 일부가 자신의 정치적 성향을 공개적으로 드러내지 않는 경향이나 진보 성향 미국 언론(CNN, 뉴욕타임즈, 워싱턴포스트 등) 보도에 과도하게 의존한 결과라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다른 것을 지적하고 싶다. 우리나라는 미국 대통령 선거를 논하고 예단함에 있어 바이든을 조망하는 데 소극적이었다. 오직 카멀라 해리스에만 집중했다. 누가 뭐래도 미국의 "현재"는 바이든이다. 그리고 선거는 현재를 평가하는 판단이다. 혹자는 미래를 기약하는 판단이라 주장하겠지만, 양 진영이 극단으로 대립하는 정치 상황에서 유권자에게 그런 넉넉함과 여유로움을 기대하긴 힘들 것이다. 현재에 치우친 판단이라 할지라도 이를 굳이 부정적으로 볼 필요는 없다. 유권자들이 현재의 삶과 상황에 만족하거나 불만족한 감정을 투표 용지에 투영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또한 현재의 상황을 기준으로 미래의 가능성을 추정하는 것도 합리적인 태도이다. 이에 현 정권이나 집권당에 대한 불만으로 야당에 표를 던지는 선거 양상은 어느 나라의 정치 현실에서든 동일하게 목격된다. 극단적으로 말한다면 유권자의 권리가 정상적으로 보장되는 모든 선거가 사실상 그렇다. "It's the economy, stupid." 1992년 빌 클린턴은 위의 메시지를 통해 경제적 불만을 자극하여 조지 부시를 꺾었다. 유권자들이 ...

인간은 신이라는 개념을 부정할 수 있을까?

이미지
  과학이 속속들이 전해오는 무한한 지식에 직면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추가적인 '앎'이 아니다. 그보다는 지금까지 알아왔던 것을 버리고 대체해야 함을 의미한다. 그리고 여기에는 인류 보편의 천성적 관념까지 포함된다. 대표적인 것이 신에 관한 관념일 것이다. 모든 문명에서 유구하게 이어져 온다는 공통점에서 볼 때, 이는 가장 강력한 범인류적 관념일 것이다. 그렇다면 과학은 이마저도 배척해 낼 수 있을까? 현시대를 사는 사람들 다수는 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을 나름 이성적 소양인 양 여긴다. '창조론', '사후 세계'가 도대체 말이 되냐는 태도이다. 누구라도 그렇게 생각할 수 있고,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당연하다. 아니, 그렇게 생각해야만 한다. 아리송한 건, 이들 중 상당수가 점괘와 사주는 또 믿는다는 사실이다. 부적을 써서 지니기도 한다. 모두 영적인 존재를 전제로 하는 행위이기에 '신'을 부정하는 그들의 태도에 모순된다. 이런 이율배반적 태도는 무엇에 기인할까? 자신의 지식과 신념을 올곧이 성찰하고 강화하지 않은 것을 지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보다는 신에 관한 관념은 인지적 영역, 즉 앎이 관여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기에 가능한 것이라 본다. 이에 인류의 태동기로 거슬러 올라가 인류가 인식 체계를 발전시켜온 자취를 되짚어 볼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