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신이라는 개념을 부정할 수 있을까?
과학이 속속들이 전해오는 무한한 지식에 직면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추가적인 '앎'이 아니다. 그보다는 지금까지 알아왔던 것을 버리고 대체해야 함을 의미한다. 그리고 여기에는 인류 보편의 천성적 관념까지 포함된다.
대표적인 것이 신에 관한 관념일 것이다. 모든 문명에서 유구하게 이어져 온다는 공통점에서 볼 때, 이는 가장 강력한 범인류적 관념일 것이다. 그렇다면 과학은 이마저도 배척해 낼 수 있을까?
현시대를 사는 사람들 다수는 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을 나름 이성적 소양인 양
여긴다. '창조론', '사후 세계'가 도대체 말이 되냐는 태도이다. 누구라도 그렇게
생각할 수 있고,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당연하다. 아니, 그렇게 생각해야만
한다.
아리송한 건, 이들 중 상당수가 점괘와 사주는 또 믿는다는 사실이다. 부적을 써서 지니기도 한다. 모두 영적인 존재를 전제로 하는 행위이기에 '신'을 부정하는 그들의 태도에 모순된다. 이런 이율배반적 태도는 무엇에 기인할까?
자신의 지식과 신념을 올곧이 성찰하고 강화하지 않은 것을 지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보다는 신에 관한 관념은 인지적 영역, 즉 앎이 관여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기에 가능한 것이라 본다. 이에 인류의 태동기로 거슬러 올라가 인류가 인식 체계를 발전시켜온 자취를 되짚어 볼 필요가 있다.
인류는 수많은 감각 수용체를 지닌 고등생물임이 분명하다. 이러한 조건은 진화의 결과겠으나, 그렇다고 이것이 마냥 생존에 유리하게 작용한다고 볼 순 없다. 모든 감각 정보를 동시에 처리하는 것은 인간의 인지 체계 안에서는 버거운 일이기 때문이다.
몇 가지 사례에서 그 근거를 찾을 수 있다. 평생 시각장애 혹은 청각장애로 살다가 수술을 통해 정상 감각을 되찾은 이들의 사연이 그것이다. 뜻밖에 이들의 상당수는 정신적 고통을 겪는다고 한다. 세상으로부터 무한히 유입되는 신호들이 심각한 혼란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이들에겐 무한함을 처리하는 학습과 훈련의 기회가 없었던 것이다.
이러한 혼란 속에선 인간은 결코 한 발짝도 내딛을 수 없다. 집단을 이루거나 무언가를 시도할 엄두조차 낼 수 없는 것이다. 곧 '생존'이 불가능하다.
이에 인류는 생존하기 위해, 즉 상호교류하고 포식자의 위협을 피하며 먹이를 탐색하기 위해, 특정 감각 신호만을 취사선택하는 능력을 발달시켜야 했다. 인간의 인식 체계가 현재 상황과의 관련성과 맥락에서 벗어난 자극을 걸러내고 중요한 정보만 선별하는 방향으로의 진화를 선택한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생존을 위한 적극적, 필연적 진화인 셈이다.
"이러한 진화 과정과는 별개로 세상은, 온 우주는 여전히 무한한 신호를 보내오는 무한한 존재다."
시간과 공간은 본질적으로 연속적인 성질을 가지기에, 세상은 하나의 커다란 아날로그라 정의할 수 있다. 이에 반해 세상이 보내오는 자극의 일부만을 취하는 인간의 인식 체계는 철저히 디지털적 속성을 가진다.
이 둘 간의 불합치, 즉 인식적 공백은 세상을 모호하고 불안하며 두려운 것으로 만들기에 인간에게 풀어내야 할 또 다른 숙제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인식과 인지 체계가 담을 수 없는 거대하고 무한한 가능성을 유한한 선택지로 제한하려는 시도가 유일한 대응 메커니즘이었을 것이다. 이에 숫자의 발견은 인류에게 필연적인 것이라 본다. 그렇다면 최초의 숫자는 무엇이었을까?
무한한 혼돈을 하나의 질서로 통합하는, 혹은 간주하는 최초의 추상적 개념. 그것은 '신(God)'이 아니었을까? 모호한 다수성을 명확한 단일성으로 환원하려는 최초의 인지적 시도, 모든 현상의 근원으로서 수렴되는 '하나'라는 수 개념의 원형적 표상.
고대 이집트의 태양신 라(Ra)를 상징하는 원이 숫자 '1'의 상형문자와 동일하다는 사실, 고대 메소포타미아 문명에서 최고신 안(Anu)의 상징과 '1'을 상징하는 쐐기문자가 같다는 사실에서도 이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숫자라는 디지털 체계에 귀의하고, 이에 기반하여 사고하려는 유구한 습성은 생존을 위한 진화의 산물, 즉 DNA에 새겨진 본능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거대한 근원적 숫자 '신(God)'을 인간의 의식에서 배제시킨다는 것은 본능을 거스르는 것과 다름없을 것이다.
나는 본능을 거스른다는 것을 불가능이라 명명하고 싶지 않다. 다만 본능을 지닌 존재에 대한 재정의라 하는 게 합당할 것이다.
이에 나는 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세상의 모든 논리에 이렇게 답하고 싶다.
"당신의 논리는 지극히 타당하다. 아무래도 신은 존재하지 않는 듯하다. 그렇기에
인간과 만물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 드리우는 그림자로 정의돼야 한다."
댓글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