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적 대립이 가지는 힘, 적의 존재가 정체성을 만든다.

"정치에서는 당신이 누구인지보다 당신이 누구와 맞서 싸우는지가 더 중요하다."

 

이 격언은 정치의 본질적인 특성을 간결하게 포착하는 통찰이다. 정치란 단순히 능력이나 개인으로서의 정체성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대립과 경쟁, 그리고 갈등의 역학 속에서 형성되는 복잡한 행위임을 나타내는 것이다.


정치적 정체성의 형성

정치를 비롯한 인간사 전체에서 볼 때, '적'의 존재는 자신의 정체성을 명확히 드러내는 역할을 한다. 정치인이나 정당은 종종 자신들이 무엇을 지지하는지보다는 무엇에 반대하는지를 통해 자신들의 입장을더 선명하게 드러내지 않는가?

 

양복을 입은 남성 2명이 서로 언쟁을 하는 모습

이는 유권자들에게 더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하고, 지지 기반을 결집시키는 효과적인 전략이 될 수 있다. 정체성을 형성하는 종교나 인종보다 정치적 소속감이 더 강력하게 작용한다는 사실에 비추어 볼 때, 이 메시지의 의미가 더욱 남다르다고 할 수 있겠다.

 

정치적 양극화의 심화

이러한 접근의 병폐도 명확하다. 정치적 양극화를 심화시킨다는 것이 그것이다. 상대방을 '적'으로 규정하고 대립각을 세우는 것은 단기적으로는 지지층을 결집시키는 데 효과적일 수 있다. 하지만 장기적으로는 사회의 분열이 초래됨에 따라 여기서 빚어지는 갈등과 피로감에 맞닥뜨릴 수밖에 없다.

상호 이해와 타협의 여지를 줄이고, 정치적 담론을 '우리 대 그들'이라는 구도로 고착화시킬 위험이 있는 것이다. 이러한 토대 위에 정치란 게 어떠한 구실을 할 수 있을지가 의문이 아닐 수 없다.


정치적 전략으로서의 '적' 만들기

정치인들은 때때로 의도적으로 '적'을 만들어내거나 과장함으로써 자신의 입지를 강화하려는 행태를 보인다. 이는 실제 정책이나 능력과는 무관하게 진영의 지지를 얻는 수단이 되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연단에 서서 대중에게 연설하는 모습

하지만 이러한 전략은 실실적인 문제 해결보다는 갈등의 고조에 초점을 맞추게 되어, 건설적인 정치 발전을 저해하게 된다.


역사적 사례

1. 냉전 시대: 미국과 소련의 대립은 양국의 정체성과 정책을 형성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공산주의와 자본주의의 대결 구도는 국내외 정책의 근간이 되었고, 이는 전세계 질서에 큰 영향을 미쳤다.

2. 프랑스 혁명: 혁명 세력은 구체제(앙시앙 레짐)를 '적'으로 규정함으로써 자신들의 정체성과 목표를 명확히 했다. 이러한 정체성이 혁명의 강력한 동력이 된 것이다.

3. 미국의 매카시즘: 1950년대 미국에서 조지프 매카시 상원의원이 주도한 반공 운동은 '공산주의자'를 적으로 규정하고 이를 통해 정치적 영향력을 확대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많은 무고한 시민들의 인권이 침해되는 결과가 발생했다.

4. 브렉시트: 영국의 EU 탈퇴 운동은 EU를 '적'으로 규정함으로써 영국의 주권과 정체성을 강조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이 는 영국 내부의 분열을 심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오기도 했다.

 

긍정적 활용의 가능성

대립의 원리를 긍정적인 방향으로 활용하는 것도 충분히 가능한 얘기다. 예를 들어, 기후 변화나 빈곤과 같은 글로벌 이슈를 '공동의 적'으로 규정함으로써 국제 협력을 강화하고 공동의 목표를 향해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정치적 대립의 에너지를 건설적인 방향으로 전환할 수 있는 것이다.


결론

적을 규정함으로써 자신의 정체성을 구축하려는 정치적 레토릭은 정치인들에게는 전략적 도구가 될 수 있지만, 동시에 사회의 분열을 심화시킬 위험도 내포하고 있음을 외면해선 안 된다. 따라서 이러한 원리를 인식하고 있되, 이를 건설적이고 포용적인 방식으로 활용하려는 고민이 뒤따라야 할 것이다.

현대 극단의 정치 상황에서, 건설적인 대립의 문화를 만들어가는 것이 시급한 과제가 아닐 수 없다. 상대를 완전한 적으로 규정하기보다는 서로 다른 관점을 가진 정치적 경쟁자로 인식하는 성숙한 정치 문화가 지금 우리에겐 절실하다. 이를 통해 대립이 파괴적인 갈등이 아닌, 민주주의를 발전시키는 건설적인 동력이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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