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괴한 계엄령일 수밖에 없는 이유

2024년 12월 3일 밤 11시, 대통령 윤석열은 대국민 담화 도중 느닷없이 비상 계엄을 선포한다. 시간도 시점도 상황도 모두 황당할 따름이었다.

수많은 시민들의 저항과 국회의 발빠른 대처가 있었기에 이 무도한 계엄에 대한 해제 요구안이 가결될 수 있었고, 유혈 사태나 격한 충돌 역시 막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 과정은 결코 순탄하지 않았다.

국회가 경찰에 의해 봉쇄되고 헬기를 탄 계엄군이 국회 본청에 난입한 일련의 과정들은 말 그대로 일촉즉발의 연속이었다. 국민들은 밤새 부들거리는 심정으로 이 숨막히는 과정을 힘겹게 지켜봐야만 했다.

 

총을 조준하는 군인과 저항하는 시민의 모습을 담은 일러스트

계엄이 실패한 직후, 대통령과 내각 구성원들, 집권 여당은 거센 후폭풍에 직면하게 된다. 계엄 포고문의 어떠한 조항도 국민을 납득시킬 수 없기 때문이다.

길지 않은 시간이나마 우리가 왜 이 고통스러운 순간을 감내해야 했었는지 누구도 명확한 대답을 내놓지 못 하고 있다. CNN 등의 외신이 논평하는 대로, 그 모든 것이 기괴했다고 밖에 표현할 수 없다.

 

기괴한 이유1

대한민국의 현행 계엄법에 따르면 대통령에게 계엄령을 건의할 수 있는 사람은 국방부 장관과 행정안전부 장관뿐이다. 그런 만큼 계엄 포고의 실체적 이유는 이중 누가 건의했냐와 직결된다.

지진과 같은 자연재해나 감염병이 창궐한 때에는 행정안전부 장관에 의할 것이다. 하지만 이번 계엄령을 건의한 건 국방부 장관이다. 따라서 전시 또는 그에 준하는 사태, 즉 위험한 안보 상황을 상정한 것이라고 봐야 한다. 하지만 군사적 위협이나 도발이 전무했다는 점에서 그 실체적 당위성을 도저히 납득할 수 없다.

가장 괴이한 것은 포고령에 담긴 내용과 워딩이다. 우선 국회의 기능을 막으려는 시도는 명백히 위헌 사항으로서 이것이 정상적인 포고령이 아님을 단적으로 드러낸다. 윤석열 정부가 풀지 못 한 전공의 의료 갈등을 계엄으로 풀려는 어의없는 시도가 보이기도 한다. 무엇보다 '처단'이라는 극악한 표현은 전두환, 박정희 때도 없었던 것으로 최소한의 격식까지도 갖추지 못 했다.

 

계엄사령부 포고령 원문

그렇다고 절차적 요건을 충족한 것도 아니다. 우리 헌법은 계엄령 선포와 함께 이를 즉시 국회에 통고하여 심의를 받게 하고 있다. 군부의 무차별적 횡포를 경험한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게 하려는 조치로서 국가 비상 사태의 적법성을 확보하여 민주주의의 근간을 보호하는 데 그 목적이 있는 만큼 이 원칙은 엄중히 지켜졌어야 했다.

절차와 요건을 잦추지 않았다면, 헌법의 핵심 가치를 철저히 무시한 불법 행위임이 명백하다. 이에 정적을 척결하여 자신의 정치적 안위를 지키려는 친위 쿠데타, 즉 '내란' 행위로 볼 여지가 충분하다는 의견이 많은 지지를 얻고 있다.

 

기괴한 이유2

이 혼란의 사태 속에 집권 여당의 행보 역시 기괴했다. 국회의원 본령의 근거지는 어디인가? 누가 뭐래도 국회다. 이에 국회 의장은 당연히 전 의원들을 국회로 소집시켜 이 사태에 맞서려 했다.

더불어 민주당 이재명 대표를 비롯한 야당 의원들 다수는 속히 국회로 향했다. 시민들 역시 국회로 달려가 이들의 입성을 적극 도왔다. 하지만 괴이하게도 여당인 국민의 힘 의원들은 자신들이 위치해야 할 곳이 국회가 아니라고 판단한다.

야당 위원들은 경찰의 봉쇄를 피해서 담장을 넘어 겨우 국회 본청에 입성할 수 있었다. 몸을 던지는 시민들의 투쟁이 없이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국회로 향하는 군차량을 시민들은 온몸으로 막았고, 12월의 차디찬 아스팔트에 드러누워 저지했고, 국회 정문에서 강렬히 저항하여 의원들을 안으로 밀어넣었다.

 

국회에 난입한 무장 군인들과 국회 당직자들 간의 몸싸움

이 모든 것은 무거운 마음에서 행해졌다. 일체의 정치 행위를 처단하겠다는 계엄 포고령하에 국회로 들어가는 것은 사지로 들어가는 것과 같았기 때문이다. 들어가는 의원들도 들여보내는 시민들도 모두 무거운 마음이었다.

하지만 여당 '국민의 힘'은 각자가 헌법 기관인 국회의원으로서의 무건운 책무를 외면해버린다. 정족수 150명을 채워야 하는 긴박한 상황을 전국민이 마음 졸이며 지켜보는 가운데, 그들은 자신들의 당사로 피신하여 일신의 안위만을 도모했다는 비판에 직면하고 있다.

나아가 정족수를 채우지 못 하게 함으로써 의결을 무력화하려는 시도가 아닌지가 의심을 받고 있다. 헌법 수호의 의무를 저버리고 불법 계엄에 동조한 것이란 비판을 피할 수 없는 것이다. 그들이 집권 여당이라는 사실이 실로 기괴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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