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적 혼인률 감소, 결혼의 주체는 과연 누구인가?

역사적으로 혼인은 공동체의 결정

인류 역사에서 결혼은 단순히 두 개인의 결합이 아닌 공동체의 중대한 사회적 행위였다. 현대인들은 결혼을 지극히 개인적인 선택으로 여기지만, 이는 매우 최근의 인식임을 명확히 해야 한다.

많은 사람들은 혼인률과 출산률 감소를 젊은 청춘들의 가치관 변화나 노력 부족으로 설명하려 들지만, 이는 결혼에 있어 사회와 공동체의 역할을 간과한 시각이다.

수천 년의 인류 역사를 살펴봐도, 결혼은 부족과 씨족, 가문과 같은 공동체의 핵심적인 결정 사항이었다. 개인의 의지나 선호도는 부차적인 것이 었으며, 전혀 고려되지 않는 경우도 부지기수였다.

 

남녀가 어깨동무를 하고 있는 모습

오늘날과 달랐던 결혼 풍습과 인식

동서양을 막론하고 오랜 역사에서 중매 방식이 주된 혼인 형태였다는 사실은 결혼의 본질적 성격을 잘 보여준다. 귀족들은 정치적 동맹 또는 가문의 번영을 위해 혼인을 이용했다.

일반 평민 사회의 혼인 형태 역시 공동체 중심이긴 마찬가지였다. 특히 농경 사회에서는 노동력의 교환과 협력이 필수적이었기에, 혼인을 통해 마을 간 유대를 강화하고 노동력을 확보하려 하였다.

노비 계급은 더 말할 것도 없다. 노비의 혼인은 노동력의 유통 및 재생산과 직결되므로, 당사자의 의사보다는 주인과 마을의 필요에 절대적으로 따라야 했다. 이렇듯 개인이 주체가 되지 못 하는 혼인 형태가 사회 계층 전체에 걸쳐 주를 이룬 것이다.

심지어 얼굴도 모른 채 혼인이 성사되는 일이 예사였다. 우리나라는 광복 이후에도 꽤 오랫동안 이러한 전통적인 인식에 바탕을 둔 중매혼이 지배적인 혼인 풍습을 이뤄왔다.

사실상 오늘날까지 중매혼의 정서가 남아 있는 점을 고려할 때, 전통적인 풍습에서 완전히 벗어나 남녀만의 의지로 배우자를 찾고 혼인을 이루는 형태는 비교적 최근에 와서야 자리잡았음을 상기해야 한다.

지금은 결혼이 사랑의 결실로서 그 주체가 개인 당사자임에 의심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전통관 안에서는 공동체 번영의 한 방편으로서 그 주체는 결코 개인이 아니었다. 이에 두 형태를 동일선상에 두고 수치 변화를 따지는 건 많은 오류를 품게 된다.

 

현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 옛 결혼 풍습

할아버지, 아버지 세대가 줄곧 주장하는 것이 있다. 요즘 젊은 아이들은 결혼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전통 세대들은 어땠을까?

현대 사회에서 결혼의 가장 핵심적인 요소는 '자발적 동의'다. 당연하게도 법적으로나 윤리적으로나 혼인 당사자들의 자유로운 의사 결정이 없는 결합은 제도적으로 인정되지 않는다.

하지만 전통 사회에서는 이를 꽤 폭넓게 인정해 왔다. 극단적인 예를 들자면, 소위 "보쌈"이라는 납치 행위도 결혼의 한 형태로 받아들일 정도였다. 오늘날의 인식이나 법에선 절대 인정될 수 없으며, 오히려 처벌 대상이 된다.

보쌈까진 아닐지라도, 당사자의 '자발적 동의'가 배제된 혼인 결정 및 배우자 선택 또한 지금의 상식과 법률은 인정하지 않는다.

과거 혼인들의 적법성을 소급하여 따지자는 것이 아니다. 다만, 현재와 과거의 혼인률을 비교하고자 할 때, 과거 높은 혼인률의 통계적 보정 필요성을 말하고자 함이다.

실질적으론 강제적 결합이거나 거부할 선택권이 사실상 없던 사정이, 적어도 현 어르신 세대까지는 이어져 왔다고 보는 게 맞다. 따라서 이를 현대적 기준으로 재검토하면 어르신 세대 혼인 건수 상당수는 제외되어야 함이 타당하다. 그렇기에 과거 수치를 기준으로 현재 결혼률의 감소를 단정해선 안 된다.

 

사회 공동체 지원 체계의 쇠퇴

오늘날 선진국에서 나타나는 혼인률 감소 현상은 단순히 젊은 세대의 가치관 변화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다. 결혼을 주선하고 지원하던 과거 공동체의 기능이 현저히 약화된 것이 핵심 원인은 아닌지 따져봐야 하는 것이다.

 

남녀가 서로 바라보는 모습

가족과 친족의 네트워크가 약화되었고, 종교 단체나 지역 사회에 의무 지워진 중매 역할도 요즘의 인식에서는 부자연스럽다. 개인들은 이제 배우자 선택부터 결혼 과정 전반을 홀로 감당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해 있다.

현대 사회에서 결혼은 전적으로 개인의 책임이 되었고, 그리 되는 것이 당연하겠으나 이것이 익숙하냐는 또 별개의 문제다. 인류가 수천 년간 배우자 선택, 주거 문제 등에 관련한 공동체의 지원 속에서 결혼 제도를 유지해 온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기 때문이다.

이에 과거의 관점에서 현 세태를 바라 볼 때, 진정 혼인을 행하지 않는 당사자는 젊은이들 개인이 아닌 사회 공동체가 아닐까?

 

새로운 사회지원 체계 구축 필요성

물론 지금은 자유로운 만남과 연애가 얼마든지 가능하며, 소위 결혼정보회사와 같은 시스템도 잘 마련돼 있다. 하지만 옛 공동체가 부여해 온 '암묵적 동의'가 '자발적 동의'로 완전히 대체된 현시점에서, 연애는 연애일 뿐 그것이 곧 결혼을 의미하진 않는다.

그렇다고 강제성을 근간으로 하는 '암묵적 동의'를 다시 복원하자는 터무니없는 주장을 하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혼인률 감소의 원인을 결혼 적령기 세대들에게서만 찾으려는 편중된 시각을 교정하라 제언하고 싶은 것이다.

무엇이 문제인지 혹은 그것이 문제가 맞긴 한지를 명확히 하기 우해서는 우리가 견지하고 있는 기준과 사고를 우선 점검해야 하는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결혼의 근본 목적이 가족의 형성임을 상기해야 한다. 가치관의 성숙에 따라 더 이상은 인정되지 않는 전통적 가족 형성 방식을 앞서 지적하였다. 그렇다면 지금은 그 가치관 변화가 가지고 온 새로운 형태의 가족 형태에 시선을 돌려야 하지 않을까?

결혼 없는 출산 가정, 딩크족, 그 외 다양하고 새로운 가족의 형태를 폭넓게 받아들이고, 이를 지원하는 사회적 모색에 대해서도 깊은 고민을 당부하고 싶다. 가정을 이룩하는 주요 주체가 공동체란 사실이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음을 우리는 잊지 않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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