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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률 정보

부작위에 의한 업무상 배임, 작위 의무의 범위

도시개발사업을 추진하던 시행사 대표의 업무상 배임을 따져볼 수 있는 사건입니다. 사건의 이해를 돕기 위해 '환지'의 개념에 관한 설명으로 시작하겠습니다.

 

사전 지식: 환지의 개념과 관련 사무

환지는 도시개발이나 토지구획정리사업에서 사용되는 방법으로, 간단히 말해 '땅 바꾸기'라 칭할 수 있습니다. 개발 전의 불규칙하고 효율적이지 못한 토지를 일괄적으로 정비한 후, 원소유자들에게 비슷한 가치의 새로운 토지 또는 금전으로 제공하는 것을 말하지요.

 

이를 위해 원소유자들은 조합을 구성하여, 공정한 환지 이익 분배를 도모합니다. 환지의 분포에 따라 특정 조합원들의 환지 가치는 상승할 수 있지만 또 다른 조합원들의 환지 가치는 그렇지 못한 경우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인데요.

 

이런 상대적 불이익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가치가 상승한 환지를 소유한 조합원들로부터 '청산금'을 징수하여 모든 조합원들에게 공평하게 분배하는 과정이 필요할 것입니다.

 

환지 실시계획변경으로 환지 일부 가치가 상승한 상황이라면, 시행사 대표는 상승한 가치를 재감정 평가하여 지자체에 환지계획안변경 인가를 받아야 합니다.

 

그래야 이를 근거로 합리적인 청산금을 설정하고 징수하여 공평하게 분배할 수 있기 때문이지요.

 

사건 개요

도시개발사업을 추진하던 시행사의 대표이사(이하 피고인)가 환지계획이 변경되어 가치가 상승했음에도, 환지계획병경 인가 등의 사무를 이행하지 않아 '부작위에 의한 업무상 배임 미수'를 이유로 고소 당한 사건입니다.

 

환지 가치가 상승한 사정하에서 일부 조합원들로부터 청산금이 징수될 수 있게끔, 시행사 대표는 환지계획변경 인가 신청 등의 조치를 취해야 하는데요.

 

이 의무를 이행하지 않은 채 퇴사해 일부 조합원들은 상승 이익분을 고스란히 누리게 되는 반면, 또 다른 조합원들은 공정한 이익 분배가 되지 않음에 따른 상대적 불이익을 입게 될 가능성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에 조합원들은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고 퇴사한 피고인의 행위가 작위 의무를 위반하였기에 '부작위에 의한 업무상 배임'이라 주장한 것인데요.

 

정확히는 업무상배임의 미수를 주장한 것입니다. 피고인의 퇴사 이후, 조합원들이 직접 환지계획변경안 인가를 신청하여, 발생 가능한 불이익을 막았기 때문이지요.

 

재판의 결과

항소심에서는 피고인이 환지계획변경인가를 신청하지 않고 퇴사한 행위를 업무상 배임 미수로 판단하여 1심의 무죄를 파기하고 징역 2년을 선고했습니다.

 

하지만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습니다. 피고인의 퇴사가 곧바로 피해자 조합에 재산상 손해를 줄 위험으로 구체화되진 않았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 대법원 판단의 근거

우선 피해자 조합의 다른 임원들도 환지계획변경에 따른 재감정의 필요성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고, 피고의 퇴사 이후에도 해당 업무를 담당하던 직원들은 계속 근무하였습니다.

 

또한 환지계획변경을 즉시 이행해야 할 만큼 상황이 급박하지 않았기에 피고인의 부작위가 곧바로 조합원들의 피해로 이어진다고 볼 수 없다 판시한 것입니다.

 

이는 신속히 환지계획변경인가 신청을 서둘러야 하는 작위 의무를 인정하지 않은 것입니다. 그러니 논리적으로 작위 의무 불이행 또한 성립할 수 없는 것이기에 업무상 배임의 실행으로 볼 수 없다는 것이지요.

 

시사점

부진정 부작위범이란 어떤 행위를 하지 않음으로써 발생하는 범죄를 말합니다. 이러한 범죄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행위자에게 특정한 결과를 막아야 할 법적 의무가 인정돼야 하는데 이를 '작위 의무'라고 부릅니다.

 

사회적으로 작위 의무는 꽤 다양하고 넓은 범위 안에서 존재합니다. 법률에 명시된 의무뿐만 아니라 계약을 통해 발생한 의무, 사회에서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규범에 따른 의무, 그리고 논리적으로 당연히 해야 할 것으로 여겨지는 의무까지 모두 포함되니 말입니다.

 

하지만 사법적 관점에서 다뤄질 때, 즉 부진정 부작위범의 성립을 상정할 때는 사회 상규 및 조리, 도덕적 또는 종교적 의무까지 모두 작위 의무로 보는 것은 적절치 않습니다.

 

법적인 작위 의무의 범위를 너무 넓게 해석하면, 개인의 자유로운 판단과 기본권은 물론 법적 안정성을 심각하게 해칠 수 있기 때문입니다.